notitle / 2009/07/09 10:56

 글을 쓰다 말았다.

 남들이 오해하고 있는 (어찌보면 내가 오해하고 있는걸지도) 나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필요성이라는 단어 말고 다른 단어를 대체하고 싶은데 머릿속에 뱅글거리기만하고 튀어나올줄은 모른다. 이리저리 써내려가다 임시저장만 해놓고 창을 닫았다. 대체 나의 배려심에 관한 변명 아닌 변명이 구차하거나 찝찝하게 나열되는 텍스트들로 씌여질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사실 니들이 생각하는것처럼 배려좋은 사람이 아니예요 - 라는 말을 하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나 활용할 수 있는 단어들을 죄 가져다 써 쓸 필요가 무에 있겠나. 어째서 사람들은 나의 이것을 알아채주지 못할까에 대한 투정은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것에 아무도 호응을 해주지 않는다며 괜시리 칭얼대는것과 같을뿐인데.

 글이 제대로 씌여지지 않을 때 마다 우울이 점점이 되어 박힌다. 글이 없어도 사는 삶을 택한것이 벌써 만으로도 오년이 넘었는데도 포기를 하지 못한 집착이 애정에 조금씩 흡집을 낸다. 글을 계속 써야하는지, 읽는것만으로도 충분해야하는지 혹은 모든것을 다 포기해야하는지 간혹 고민한다. 전에는 없던 글보다 말이 편한 경우가 몇번 생기고 나니 요령이 생겨 도피할 길만 찾아 갸웃거린다. 마치 심플한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서는 감성적인 글 따위는 버려두고 오직 대범한 서사만이 필요한것인양 굴었다. 이성적으로 굴 수 있는것도 아니면서 잘라낸 감성의 자리에는 공허가 남아서 모든것이 잦아들었다. 글을 쓰지 않음을 수시로 떠올리면서도 글을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스산함을 느꼈다. 마음이 시리고 손끝이 차다. 날이 더워 올라간 체온에도 응어리진 저 속의 손끝만은 차다.

 애정과 희망이 더이상 없다 말하는 이 세계의 것들은 애초에 애정을 주던것들이 아니었다. 열아홉과 스물, 스물하나와 스물 둘. 그 어느해부터 흔한 애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나는 또 슬퍼졌다. 유유자적함을 가장한 곪아버린 피부만이 존재했다. 쥐어짜면 손독이 올라 더 땡땡해지고 아파질게 뻔한데도 손조차 씻을 생각을 안하고 짜내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척은 혼자 다하면서 결국 이렇게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슬픈것 조차 잊어버리고 일상을 지나보내겠지. 무심함이 늘어나면 이게 슬픈건지 기쁜건지조차 구분이 안가기 마련이다.